12. 데이브 메이어스

누구의 전속 감독도 되지 않았기에, 도리어 이 장르 전체의 초상이 된 사람.
0. 도입
2000년대 초 힙합 뮤직비디오의 문법을 정의하는 데 관여했고, 2010년대에는 켄드릭 라마와 그래미 무대에 함께 섰고, 2020년대에는 콜드플레이와 방탄소년단의 우주를 연출하고 블랙핑크의 월드투어 티저를 찍는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반복하기보다, 매번 아티스트가 가진 세계를 읽고 그것을 더 크고 낯선 이미지로 부풀려 왔다. 타인의 세계를 가장 크게 만드는 감독, 데이브 메이어스다.
1. 생애·궤적·협업
메이어스는 1972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태어났다. 열일곱 살 때 동네 랜드마크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키웠고,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Loyola Marymount University)에서 영화 제작과 철학을 함께 전공했다. 장편 영화 감독을 꿈꾸던 그가 뮤직비디오 쪽으로 방향을 튼 계기는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와의 우연한 만남이었다. 1997년 오클랜드의 언더그라운드 힙합 듀오 The Whoridas의 영상으로 처음 MTV에 이름을 올린 뒤, 그는 1990년대 말부터 힙합과 R&B를 중심으로 빠르게 작업량을 늘려갔다.
전환점은 2000년대 초였다. 아웃캐스트의 'B.O.B.'를 거쳐 미시 엘리엇과 'Get Ur Freak On', 'Work It', 'Lose Control' 등 11편을 함께 만들며 그 시대 힙합 뮤직비디오의 가장 눈에 띄는 얼굴 중 하나가 된다. 둘의 관계는 단순히 감독이 가수의 주문을 받아 구현하는 방식과도 조금 달랐다. 메이어스의 회고에 따르면 미시가 먼저 아이디어를 던지면 그가 장면을 불리고, 이미 누군가 한 발상처럼 보이면 서로 지적하며 다시 고치는 식으로 작업했다. 서로 좋아하는 농담과 기괴한 이미지의 감각까지 비슷해, 몇 마디만으로도 통하는 일종의 단축어가 생겼다고 했다. 2006년 'Lose Control'로 그래미 뮤직비디오 부문 상을 받았을 때 감독 크레딧에도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올랐다. 이후 다른 아티스트에게도 반복될, 메이어스 특유의 협업 방식이 이 시기에 자리를 잡은 셈이다.
같은 시기 그는 애플의 아이팟 실루엣(iPod Silhouette) 캠페인을 비롯한 광고로 활동 범위를 넓혔고, 장편 영화에도 몇 차례 손을 댔다. 2010년대 초에는 음악영상에서 약 3년간 물러나 영화와 광고에 집중하기도 했지만, 복귀 뒤에는 오히려 다른 세대의 아티스트들과 다시 관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흐름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 2017년 켄드릭 라마와 데이브 프리의 '더 리틀 호미즈'와 함께 만든 'HUMBLE.'이었다. 세 사람은 그해 MTV VMA 감독상을 함께 받았고, 메이어스는 2000년대 미시 엘리엇의 감독에서 2010년대 켄드릭 라마의 감독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겼다. 이후 트래비스 스콧과 아리아나 그란데, 빌리 아일리시와 SZA, 콜드플레이와 방탄소년단, 블랙핑크까지 — 한 관계가 끝날 때마다 또 다른 세대의 아티스트가 그의 필모그래피에 들어왔다.
2. 대표작 4선
2-1. B.O.B. (Bombs Over Baghdad) — Outkast (2000)
안드레 3000이 침대에서 뛰쳐나와 아이들을 이끌고 애틀랜타의 공공주택단지 보웬 홈스(Bowen Homes)를 내달린다. 빅 보이는 차체가 들썩이는 캐딜락을 몰고, 가스펠 합창단과 댄서들이 뒤섞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힙합 뮤직비디오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인데, 잔디는 보라색이고 자동차는 빛처럼 질주하며 모든 색이 현실보다 몇 단계씩 과장되어 있다. 실제로 안드레가 메이어스에게 제시한 구상도 동네를 뛰어다니다 차를 타고 클럽에 간다는 단순한 것이었다. 메이어스는 그 위에 비현실적인 색과 이미지를 덧씌웠고, 완성까지 여섯 주를 더 들여 프레임마다 따로 색을 입혔다.
당시 LA Weekly는 이 영상이 깨진 유리와 갱 표식 같은 익숙한 빈곤의 클리셰 대신 주거단지를 거의 휴양지처럼 찍었다고 평했다. 훗날 미디어 학자 캐럴 버날리스(Carol Vernallis)가 메이어스의 특징을 ‘기호의 과잉’이라 부르며 대표 사례로 이 작품을 집어든 것도 그래서다. 정작 메이어스 본인은 훨씬 단순하게 설명했다. Outkast가 보여주고 싶었던 애틀랜타의 문화를, 누구든 보고 하나의 거대한 움직임처럼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아티스트가 가져온 세계는 그대로 두고, 그것이 화면 밖으로 넘칠 만큼 부풀린다.
2-2. Lose Control — Missy Elliott (2005)
검은 방에서 춤추던 미시 엘리엇이 어느새 모래에 파묻혔다가 솟아오르고, 화면이 오래된 필름처럼 바뀌면서 흰옷을 입은 무리가 1930년대 스윙댄스 린디합을 춘다. 미시 엘리엇이 직접 제안한 콘셉트로, 안무가 Hi-Hat(Nadine Ruffin)은 이를 힙합의 움직임과 섞었고 메이어스는 서로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공간들을 빠르게 갈아치운다. 장면은 계속 끊기는데 춤만은 끊기지 않는 셈이다. 영상 말미에는 아예 곡이 ‘On & On’으로 넘어가면서 머틀리 크루(Mötley Crüe)의 토미 리까지 와이어에 매달려 날아다닌다.
이 영상으로 메이어스와 미시 엘리엇은 2006년 그래미 뮤직비디오 부문 상을 함께 받았다. 감독 크레딧에도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올라 있다. 미시가 춤과 아이디어를 던지고, Hi-Hat이 그것을 몸으로 만들고, 메이어스가 기괴한 이미지와 공간으로 불려내는 방식 — 이후까지 이어질 이들의 협업 구조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 가운데 하나다.
2-3. HUMBLE. — Kendrick Lamar (2017)
교황의 옷을 입은 켄드릭 라마로 시작해, 최후의 만찬을 본뜬 식탁과 돈다발 위를 거쳐 머리에 불이 붙은 채 카메라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곡은 계속 “겸손하라”고 명령하는데 화면 속 켄드릭은 매번 교황과 예수, 부자와 스타의 자리를 차지한다. 겸손을 말하면서 자기 자신을 가장 거대한 이미지로 만드는 역설이 영상을 이끈다.
영상 속 다양한 이미지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색다른 기술들을 사용한다. 자전거 장면에서는 360도 카메라의 영상을 뒤집어 켄드릭이 작은 행성을 도는 것처럼 만들고, 모션컨트롤 로봇으로 카메라를 마치 순간이동을 보여주듯 빠르게 움직인다. 다만 이것은 메이어스 혼자의 세계라기보다 켄드릭과 데이브 프리의 연출팀 ‘The Little Homies’와 함께 만든 결과물이었다. 메이어스는 세 사람이 각자 잘 아는 영역의 빈칸을 채웠다고 회고했다. 영상은 2017년 MTV VMA에서 올해의 비디오를 포함해 6개 부문을 수상했고, 메이어스와 The Little Homies는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그래미 최우수 뮤직비디오까지 이어졌다.
2-4. SICKO MODE — Travis Scott ft. Drake (2018)
해가 지평선까지 내려앉은 휴스턴에서 드레이크가 걸어오고, 트래비스 스캇은 자기 얼굴을 본뜬 거대한 조각상 곁을 말을 타고 지나간다. 조금 뒤에는 스쿨버스와 걸그룹, 사람 눈동자 속에서 춤추는 여성까지 튀어나온다. 세 개의 서로 다른 구간이 갑작스러운 비트 전환으로 이어지며 영상도 굳이 그 틈을 메우지 않는다. 음악이 방향을 틀 때마다 공간과 인물, 크기와 색까지 통째로 갈아치우며 하나의 장면을 다음 장면으로 밀어낸다.
그 와중에도 장소만큼은 분명하다. 촬영지는 스콧의 고향 휴스턴이고, 두 사람은 DJ Screw의 역사가 남은 Screwed Up Records & Tapes 앞에 서며 Screwed Up Click의 Big Hawk는 움직이는 그래피티로 되살아난다. 후반작업에서는 한 달 동안 약 200개의 VFX 숏이 만들어져, 배경의 크기가 박자에 맞춰 서로 뒤집힌다. 현실의 휴스턴을 그대로 가져오되, 그것을 트래비스 스캇의 Astroworld로 펼쳐낸다.
3. 정체성과 의의
어떤 감독들은 관계를 통해 자신을 규정한다. 특정 아티스트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수십 년째 카메라를 맡기며 그 신뢰 자체를 스타일로 만드는 것처럼, 메이어스에게도 얼핏 같은 논리가 통할 것 같다. 미시 엘리엇과 10편 이상을 함께했고, 켄드릭 라마와 데이브 프리의 ‘리틀 호미스’와도 그의 후기 경력을 대표할 작품들을 만들었다.
다만 코빈의 관계가 소수이자 장기적이라면, 메이어스의 관계는 다수이자 계속 갱신된다. 미시 다음에는 켄드릭이 오고, 그다음에는 트래비스 스콧과 아리아나 그란데, 콜드플레이와 방탄소년단, 블랙핑크가 들어온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때마다 메이어스 자신도 함께 변한다는 점이다. 아웃캐스트가 가져온 애틀랜타에는 보라색 잔디를 깔고, 미시가 던진 춤과 농담은 기괴한 공간으로 불리며, 켄드릭과 데이브 프리의 발상은 교황과 최후의 만찬이 되고, 트래비스 스콧의 휴스턴은 거대한 머리와 뒤틀린 꿈으로 변한다. 결과물의 표면은 계속 달라지지만, 상대가 가져온 세계를 받아들여 현실보다 몇 단계 크게 부풀리는 방식만큼은 묘하게 반복된다. 메이어스에게 스타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스타일이 완성된 이미지보다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 놓여 있는 셈이다.
본인도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는다. 그는 뮤직비디오에서는 이미 아티스트와 그들이 쓴 곡이 일종의 대본을 제공하고, 자신은 거기에 맞는 비주얼 아이디어를 얹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감독 크레딧도 미시 엘리엇, 리틀 호미스, 트래비스 스콧처럼 아티스트 쪽과 자주 나눠 갖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단순한 실행자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그가 서른 해 동안 반복해온 것은 하나의 색이나 구도, 특정한 레퍼런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언어를 빠르게 읽고 그것을 이미지로 증폭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메이어스에게 관계는 매번 새로운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추신 — 함께 보면 좋은 영상
- Missy Elliott — Get Ur Freak On (2001)
- Ariana Grande — no tears left to cry (2018)
- Little Simz — Gorilla (2023)
- BLACKPINK — JUMP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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